페북보다 잘나갔던 스타트업,
팹닷컴의 몰락을 초래한 프로덕트 마켓 핏.

신재은 | 2024.03.12

출처: Pixabay

페북보다 잘나갔던 팹닷컴의 몰락.


팹닷컴 (Fab.com)은 2011년 브래드포드 셀해머와 제이슨 골드버그가 설립한 회사로, 독창적인 디자이너 제품을 엄선해 큐레이션 하는 플래시 세일 (Flash Sale) 사이트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흔히 홈쇼핑 채널에서 볼 수 있는 물건 판매 방식인, 한정된 수량의 물건을 단기 간에 싸게 살 수 있는 플래시 세일 방식을 부티크 디자이너나 소규모 디자인 숍이 만드는 쥬얼리, 홈 인테리어 제품 등에 적용한 비즈니스 모델이었죠.

이 회사는 서비스 출시 후 5개월 만에 백만 고객을 달성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참고로, 페이스북이 백만 고객을 달성하기까지 10개월 걸렸으니 팹닷컴의 성장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죠.

서비스 출시 1년 후인 2012년에는 600%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400만 개가 넘는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내노라하는 VC들이 투자를 받아달라고 간청(?)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고, 팹닷컴에게 선택받은 투자사 중 하나인 안데르센 호로위츠는 이 회사에 4천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리드하기도 했죠.

하지만, 팹닷컴은 창업 후 4년이 채 안되서, 투자금 2억만 달러를 날리고 디자인 제조 기업 PCH에 헐값에 팔리게 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정확한 인수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소문에 의하면 인수된 가격은 1,500만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팹닷컴이 마지막 펀드 레이징을 한 2013년에 투자 받은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이고, 회사가 그동안 유치한 누적 VC 투자 금액이 3억 달러가 넘는 걸 감안하면, 매우 뼈아픈 손실이죠.

팹닷컴의 실패 원인, PMF


팹닷컴은 섣부른 해외 진출, 무리한 사업 확장, 상품화 계획 변경, 회사의 정체성 상실 등의 이유로 몰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들은 표면적인 것으로, 실제로 팹닷컴의 몰락을 초래한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이 회사가 성공적인 제품의 ‘프로덕트 마켓 핏’에 대한 본질적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이미 10년도 지난 얘기이지만, 한 때 페이스북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며줬던 팹닷컴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실수가 여전히 업계에서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팹닷컴의 실패 원인을 통해 스타트업 관계자 여러분들이 프로덕트 마켓 핏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세 가지 키 포인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고객 집중 vs. 고객 중심


팹닷컴이 제공한 서비스는 전문가가 엄선한 디자이너의 독특한 제품을 큐레이션하고, 깜짝 세일 형식으로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한 얼리어답터, 즉 초기 사용자들은 어디서도 구하기 힘든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제품을 접할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하는 팹닷컴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소품이나 조명과 같은 제품은 고객이 때때로 ‘원하는’ 제품일 수는 있으나, 고객이 ‘절실히 필요한’ 제품은 아니죠. 즉, 팹닷컴이 제공한 서비스는 ‘고객 집중적’인 (Customer-Focused) 서비스일 수 있으나, ‘고객 중심적’인 (Customer-Centered) 서비스는 아닌 것입니다.

서비스 기획에서 고객 집중과 고객 중심은 단어 한 끗 차이지만, 서비스의 성과, 더 나아가서는 기업 성공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고객 집중은 고객이 원하는 것 (‘Want’)를 제공합니다. 반면, 고객 중심적인 제품은 고객이 절실히, 정말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 (‘Need’)을 제공합니다.

Want vs. Need


흔히 연인들 사이에서 난 너를 원해 (I want you) 와 난 니가 필요해 (I need you)는 ‘사랑한다’라는 의미로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각각 다른 의미를 내포하죠.

난 너를 원해는 지금 이 순간의 즉각적인 매력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현재 상대방에게 끌리고, 함께 있고 싶은 강렬한 감정을 나타냅니다. 즉, "지금 이 순간 너와 함께 하고 싶다"라는 지금 현재의 내가 충만하게 느끼는 강렬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난 니가 필요해는 의존적 관계성에 초점을 맞춘 표현입니다. 상대방에게서 특정한 기능이나 역할을 채워주는 것을 기대하며, "너 없이는 내가 부족하다"라는 느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내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내가 그에게 의존하는 관계일 때만 '난 니가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처: Pixabay

서비스 기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회사 제품을 ‘원하는’ 고객은, 지금 현재 고객의 감정과 취향에 따라 우리 회사의 제품을 선택한 고객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취향이 바뀌면, 고무신 언제 바꿔신을지 모르는 연인과도 같은 셈이죠.

반면, 우리 회사의 제품이 ‘필요한’ 고객은, 나(=회사)에게 의존하는 고객입니다. 내가 고객이 절실히 필요한 무엇인가를 제공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이죠. 이렇게 나에게 의존하는 고객을, 우리는 순화시켜서 ‘충성 고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고객의 취향이 바뀔 때마다 나를 (제품을) 바꿔야 합니다. 고객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객의 취향이 바뀌는 변곡점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고객의 취향에 맞게 매번 나를 바꿔야 합니다.

하지만, 고객이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오히려 고객이 나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그들이 절실히 필요한 어떤 것을 내가 제공하기 때문이죠. 고객이 절실히 필요한 제품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프로덕트 마켓 핏은 고객 중심일 때만.


스타트업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프로덕트 마켓 핏은 바로 고객이 절실히 필요한 제품을 제공하는 고객 중심적인 제품이어야만 가능합니다. 애초에 프로덕트 마켓 핏이라는 용어를 창시한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자, 앤디 라클레프가 내린 정의가 그렇기 때문이죠.

앤디 라클레프가 본래 정의한 프로덕트 마켓 핏은 입소문을 타고 고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유기적인 성장을 하는 제품을 말합니다. 고객이 원하는 제품은 이러한 기하급수적인 유기적 성장을 하기 어렵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취향이 바뀌면 성장이 자연스레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은 고객이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고객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제품이니까요.

이러한 제품은 동일한 문제를 겪는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유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기는 상황의 모수가 크면 클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유리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실리콘 밸리의 혁신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의 프로덕트 마켓 핏을 검증하는데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린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제품의 프로덕트 마켓 핏을 검증하거나 기업의 운용 효율성을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프로덕트 마켓 핏이 있다가 사라졌다?!


다시 팹닷컴의 사례로 되돌아가서, 이 회사가 제공했던 서비스를 살펴봅시다. 이 회사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공존하는 투사이드 마켓 플랫폼입니다 (two-sided market).

팹닷컴 플랫폼에서 공급자는 소규모 디자인 샵과 디자이너들로, 이 플랫폼이 제공하는 소비자 접근성이 절실히 필요한 고객입니다. 즉, 팹닷컴 초창기 시절, 이 플랫폼은 공급자들에게 소비자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고객 중심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소규모 공급자들이 판매하는 제품은 배송 기간이 다소 길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배송을 기다리는 고객들의 불만이 이어졌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팹닷컴은 플랫폼 공급자 사이드의 프로덕트 마켓 핏을 없애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합니다. 배송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회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소수의 디자이너 위주로 제품을 회사가 직접 만들어 생산하고, 재고를 보유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이렇게 되면, 본래 소비자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이 서비스의 프로덕트 마켓 핏 관련한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애초에 팹닷컴은 물건을 구매하는 수요자에게 고객 중심적이 아니라, 고객 집중적인 서비스였습니다. 팹닷컴이 주력했던 독창적인 디자인의 소가구나 액서서리 등은 고객이 때로는, 혹은 간혹가다 원해서 찾게 되는 제품이기 때문이죠. 정작 이 플랫폼에서 지갑을 열어야 하는 수요자에게 팹닷컴은, 고객이 절실히 필요한 서비스가 아니였던 것입니다.

이 회사의 초창기 시절에는, 이 플랫폼이 공급자의 소비자 접근성 문제를 해결했고 이러한 제품을 처음 접한 당시 소비자 취향에 부응했기 때문에, 앤디 라클레프가 본래 정의한 프로덕트 마켓 핏이 검증됐다라는 착시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팹닷컴 뿐만 아니라,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따라 선택받는 제품은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연인같은 고객과의 관계성을 맺게 됩니다. 만약, 우리 회사에서 출시한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과 이러한 관계성을 맺고 있다면,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고객과의 관계성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곰곰히 생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은 우리 회사가 출시한 제품과 서비스가 고객의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지 명쾌하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고객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고객이 절실히 필요한 제품이라야만,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프로덕트 마켓 핏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10억 달러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팹닷컴처럼 한 순간에 몰락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