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서 린스타트업을 하지 않는 이유.

신재은 | 2024.03.06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스타트업 관계자 여러분들은 이미 린스타트업에 다들 정통하신 고수님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린스타트업만큼 찬반 의견이 분분한 프로덕트 마켓 핏 검증론도 없기 때문에, 오늘은 왜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는지, 그 특별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린스타트업 리캡 (recap).


성공적인 제품 출시를 위해 실리콘밸리의 벤처 창업자, 에릭 리스가 고안한 린스타트업은 최소한의 기능만 제공하는 최소 기능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해 고객의 반응을 빠르게 테스트하고, 고객의 피드백을 기반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는 제품 기획 방식입니다.

실제 제너럴 일렉트릭 등 미국의 대기업들도 한 때 린스타트업을 도입했었고, 이러한 제품 기획 방식으로 좋은 성과를 낸 스타트업들도 여럿 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린스타트업은 실리콘밸리의 독약으로 불릴 만큼 그에 대한 찬반 여론이 거세죠. 반대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제로 투 원의 저자, 피터 틸과 피터 틸의 벤처 캐피털 회사인 파운더스 펀드의 파트너인 키스 라보이즈가 있습니다.

혁신적인 제품 PMF ≠ 린스타트업


고객의 피드백에 의거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는 린스타트업의 이론은 기존에 있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임은 확실합니다. 직접 고객에게 물어보는 것 만큼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확실하게 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고객’이라는 집단의 보편적인 피드백은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린스타트업이 우리가 기존에 접해보지 못했던 혁신적, 즉 완전히 새롭고 획기적인 제품의 프로덕트 마켓 핏 검증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다는 점입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로, 헨리 포드가 “고객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면 더 빠른 말이라고 말해줬을 것”이라고 한 것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애플의 스티브잡스도, "포커스 그룹에 맞춰 제품을 디자인하는 건 진짜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품을 보여주기 전까진 자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 것을 생각해보면, 혁신적인 제품의 경우 린스타트업 이론의 한계가 더욱 명확해 지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MVP가 아닌 MLP (Minimum Lovable Product)


이러한 이유로 혁신에 죽고 사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기업이 이끌어야 할 제품 혁신에 직접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린스타트업 이론을 맹신하지는 않습니다. 린스타트업이 가르치는 최소 기능 제품 (Minimal Viable Product, MVP)을 만들어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의 프로덕트 마켓 핏을 검증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죠.

이러한 내막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먼저 이들 기업들이 주력하는 최고의 고객 만족을 선사하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는 린스타트업이 말하는 최소 기능 형태로 출시되기 어려운 제품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혁신적인 제품은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제품이므로, 최소 기능만을 제공하는 제품 형태로 출시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모순적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들 기업들은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최소 기능 제품이(MVP) 아니라, 최소 선호 제품 (Minimum Lovable Product, MLP), 즉 사용자가 불편함을 감내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좋아하는 초기 제품을 만들어 고객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하나, 고객이 제품을 좋아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을 가진 ‘최소 선호 제품’과 ‘최소 기능 제품’은 단어 하나 차이지만 전혀 다른 제품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애플이 1세대 아이폰의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과 고객 경험을 쏙 빼고 (‘최소 선호 제품’), 최소한의 스마트폰 터치 기능만 구현하는 제품으로 (‘최소 기능 제품’) 고객의 반응을 테스트해 보고 프로덕트 마켓 핏을 검증하려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애플이 고객의 보편적인 피드백을 통해 아이폰의 혁신적인 디자인과 고객 경험을 점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 혹은 애플 내부적으로 고객의 초기 피드백에 근거하여 제품에 대한 정식 출시 결정을 자신있게 내릴 수 있었을지, 이러한 상황에서는 장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혁신에 대한 학계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에버렛 로저스가 발표한 혁신의 확산 이론에 따르면, 혁신적인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대중들에게 확산되기 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생소한 경험에 대한 초기 저항감을 보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고객이 초기 저항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혁신적인 제품에 대한 평가와 시장 적합성 판단을 고객의 피드백에 의거하여 내리는 것은, 혁신적인 제품 출시를 너무 일찍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무작정 MVP만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닐 수 있습니다.


사실 린스타트업은 기업 운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비교적 가성비가 떨어질 수 있는 프로덕트 마켓 핏 검증론일 수 있습니다. 특히, 기업 내부적으로 제품이 고객에게 주는 가치를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고, 최소 기능 제품을 만드는 데만 집중할 경우, 최소 기능 제품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시간과 자원이 오남용될 수 있기 때문이죠.

예전에 국내의 어느 한 스타트업에서도 신규 서비스 출시에 대한 철저한 타당성 검증 과정도 없이, 약 5개월에 걸쳐 MVP를 만들어 출시했으나, 결국 출시 3개월만에 서비스를 중단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MVP를 만들기 전에 기업 내부적으로 철저하게 제품의 본질적인 가치를 분석하고 타당성을 검증했다면, 발생하지 않아도 될 기회 비용을 치루게 된 셈이죠.

남의 얘기 같지 않다고요? 안타깝게도 이러한 경우는 스타트업계에서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하죠. 특히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린스타트업 방법론이 거의 제품 개발의 정석처럼 받아들여진 탓에, 무작정 ‘린’하게 빨리 서비스를 만들어 출시해 보고, 고객의 반응을 테스트해 보겠다는 스타트업들이 많은데, 이러한 제품 개발은 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혁신적인 기업들의 대안은?


이와 같은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혁신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의 프로덕트 마켓 핏을 검증하는데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린스타트업이 혁신적인 제품의 프로덕트 마켓 핏을 검증하거나 기업의 운용 효율성을 최적화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애플이나 아마존과 같은 세계적인 선도 기업에서 린스타트업이 말하는 최소 기능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하는 경우는 아마 거의 찾아볼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물론, 넷플릭스와 같이 이미 메인 서비스 플랫폼 안에서 고객의 경험을 지속적으로 개선시키기 위해 특정 가설을 세우고, 정량적으로 검증하는 A/B 테스트를 도입해 사용자 경험을 개선해 나가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향의 업무는 (a) 기존의 고객 경험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장과 고객 경험을 창출하는 신사업이 아니며, (b) 이들 기업에서 출시하는 베타 제품은 최소 기능 제품이 아니라, 최소 선호 제품에 더 가깝습니다.

성공한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출시 결정에 앞서, 기업 내부적으로 신사업 추진에 대한 철저한 타당성 검증을 가장 우선시합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이 혁신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하는 체계적인 프레임워크와 프로덕트 마켓 핏을 포함한 제품의 타당성 여부를 매우 꼼꼼하고 치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운영하죠. 이렇게 제품이 고객에게 주는 가치를 면밀하게 분석한 후, 제품에 대한 최종 출시 결정을 내림으로써 결국 성공할 수밖에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게 됩니다.